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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지식 해방, 국어교육의 철학, 디자인 혁명

by borybory-click 2025. 5. 2.

영화 &lt;나랏말싸미&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9. 07. 24.
  • 장르: 드라마
  • 평점: 6.72
  • 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110분
  • 감독: 조철현
  • 주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1. <나랏말싸미> 핵심은 지식 해방

영화 〈나랏말싸미〉는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가치는 단순히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한 나라의 문자 체계를 새로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지식의 해방’, 즉 정보와 권력의 탈중앙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한 행위였다. 그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 영화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당시 조선 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극단적으로 중앙화되어 있었다. 글을 아는 자는 오직 양반 사대부뿐이었고, 일반 백성은 말할 수는 있었지만, 글로 기록할 수 없었다. 글을 모르면 법령도 이해할 수 없었고, 억울함을 글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 결과 백성은 국가의 일방적인 통치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문자는 단지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정보 독점과 계급 유지의 도구였던 것이다. 〈나랏말싸미〉에서 세종이 그 한계를 인식하고 문자 창제를 결심한 것은, 단지 국왕으로서의 호기심이나 이상주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백성의 삶을 바꾸고자 했고, 말 그대로 백성들이 ‘읽고 쓰는 존재’가 되어야만 조선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훈민정음은 단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재설계하기 위한 기술적 실천이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해 당시 유학 중심의 집현전 대신, 불교계 인물인 신미 스님과 협업한다. 이는 단지 상징적인 장치가 아니다. 유교라는 공식 지식 체계가 문자의 개방을 반대한 상황에서, 세종은 오히려 주변부의 지식인에게 손을 내민다. 이것은 지식의 중심에서 소외된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존의 권위로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적 상징성이다. 영화 속에서도 반복되지만, 세종은 끝까지 훈민정음이 단지 ‘새로운 글자’라는 평가에 머무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그 글자를 통해 백성들이 억울함을 표현하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며, 권력자와 소통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것은 지금의 정보 인프라를 민주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보 독점이 무너지고,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사회 개혁이 이루어진다. 문자 개혁은 바로 그 시작이었다. 이런 시도는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기존 기득권 세력인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의 창제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들에게 있어 ‘글’은 곧 ‘권위’였기 때문이다. 문자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권위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지식의 독점이 무너진다. 실제로 영화에서 그려지듯, 세종은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일정 부분 내려놓고 백성에게 ‘기록할 권리’를 제공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식 해방이다. 훈민정음이 위대한 이유는, 그 설계가 놀랍도록 ‘사용자 중심’이었다는 데 있다. 한자는 수천 자를 외워야 하고, 구조 자체가 복잡하지만, 훈민정음은 발음 원리를 시각화함으로써 ‘적은 문자로 많은 소리를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지금으로 치면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UX 설계의 결정판이다. 문자 체계가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즉 백성)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오늘날 교육·기술 분야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훈민정음은 ‘소리’를 시각화한 문자다. 이는 곧 구술 문화를 기록 문화로 이끌어가는 전환점이었다. 인간은 말로 소통하지만, 말은 사라진다. 기록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세종은 백성이 스스로 말한 것을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고 남길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문자 개혁이 아니라, 기억의 민주화였고, 백성의 ‘존재 증명’이었다. 〈나랏말싸미〉의 핵심 장면 중 하나는 백성이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을 글로 써서 고발하는 장면이다. 이것은 단지 극적 장치가 아니다. 실제로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조선 사회에선 백성들이 ‘상소’를 보내고, 부녀자들이 가정의 일을 일기나 소설로 남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은 말하는 것과 다르다. 그것은 ‘주체의식’의 시작이며, 이 사회에 자신이 존재함을 선언하는 행위다. 문자 해방은 곧 자기 해방이었다. 우리가 흔히 문자와 교육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단지 기능적인 ‘문해력’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누구나 배울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누구나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 이 철학은 지금 우리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기술’보다 ‘접근권’이 더 중요하다는 세종의 생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가치다. 오늘날 디지털 정보 격차는 새로운 형태의 문맹이다. AI와 알고리즘, 코드와 데이터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우리는 다시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묻게 된다. 이 질문은 바로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질문과 맞닿아 있다. 기술과 지식은 언제나 특정한 권력의 편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문자든 디지털이든,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나랏말싸미〉는 이 모든 것을 잔잔하지만 뚜렷하게 말해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지 역사적 사실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서사다. 우리가 한글을 단지 ‘우리 고유의 문자’로 자부하기 이전에, 그 문자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그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제 거의 모든 국민이 안다. 그러나 그 문자를 통해 지식이 어떻게 해방되었고, 누구의 입장이 처음으로 기록될 수 있었으며, 기득권이 어떻게 흔들렸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짜 역사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이라는 문자의 탄생보다, 그 문자가 어떻게 정보와 권력을 해방시키고 백성에게 자기 표현의 권리를 부여했는지를 조명한다. 문자보다 더 중요한 건 지식 해방이었다.

 

2. <나랏말싸미>를 통한 국어교육의 철학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작품이지만, 단순히 역사적 업적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문자란 무엇인지, 왜 문자가 필요했는지, 그리고 문자를 만들려 했던 세종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탐구한다. 그 중심에는 한 가지 질문이 놓여 있다. 우리는 왜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 다시 말해, 국어교육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영화는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는 하나의 철학적 제안서이자, 국어교육의 본질과 방향성을 되묻는 교육적 텍스트로 읽힌다.

조선 초기, 백성들은 말을 할 줄 알았다. 감정을 전하고, 생각을 나누는 데에는 말이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이 글로 남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자는 권력자의 전유물이었고, 기록은 양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백성은 스스로의 말을 글로 남길 수 없었고, 누군가 대신 써주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같았다. 〈나랏말싸미〉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짚는다. 말과 글의 간극, 말할 수는 있지만 기록하지 못하는 사회, 말은 있었으나 문자는 없었던 백성의 삶. 이것은 단지 문자의 부재가 아니라, 표현력의 부재, 자기존재의 부재로까지 이어진다. 세종은 이러한 구조를 깨고자 했다. 훈민정음은 단순히 새로운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백성을 ‘쓰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적 선언이었다. 세종은 백성이 ‘스스로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이는 단지 언어 보급이나 문자 해득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언어를 회복하게 하려는 깊은 교육적 의지였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과정이다. 특히 국어교육은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이어야 한다. 오늘날 국어교육은 독해력, 문법, 어휘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적 접근만으로는 학생이 스스로의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해 타인과 소통하며 세상과 연결되는 감각을 키우기 어렵다. 〈나랏말싸미〉는 국어교육이 다시 자기 언어, 자기 말, 자기 글을 회복하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함을 상기시킨다. 말은 인간이 가장 처음 갖는 세계에 대한 해석이며, 글은 그 해석을 타인에게 증명하는 도구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해 학자들의 도움보다, 현실 속 소리와 말에서 출발했다. 그는 백성의 발음을 귀로 듣고, 말을 분석하고, 소리를 시각화하는 데 집중했다. 이 방식은 오늘날 교육학에서 말하는 ‘학습자 중심 교육’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학습자의 경험에서 출발해, 실제 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원칙은 국어교육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철학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국어 교과서는 표준어 중심, 문어체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실제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훨씬 다양하고, 감정적이며, 구어적이다. 세종이 백성의 말소리를 기반으로 문자를 만들었던 것처럼, 국어교육도 학습자의 언어 습관과 표현 양식을 존중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나랏말싸미〉가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 중 하나는, 문자가 곧 권력이라는 사실이다. 그 시대의 백성은 말을 했지만, 그것이 기록되지 않았기에 국가의 언어로 환산되지 않았다. 오직 한자를 알고 문장을 쓸 수 있는 자만이 법을 해석하고 행정 문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문자 능력이 곧 정치적 권력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통해 이 권력을 해체하고자 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고, 누구든지 법령을 읽고, 상소문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는 교육이 단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재편하는 실천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문자 해득이 곧 정치적 시민권의 출발점이라면, 오늘날의 국어교육 역시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도구로 이해되어야 한다. 국어는 단순히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언어다. 영화 속 신미 스님은 ‘말은 곧 숨이고 생명’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국어교육의 철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국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고, 위로하고, 연대하고, 공감하는 수단이다. 한글은 태생부터 공동체를 위한 언어였다. 발음하기 쉬우면서도, 누구든지 배울 수 있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설계된 이 문자는 교육이 언어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따라서 국어교육은 경쟁과 점수 중심의 기술 교육이 아닌, 정서적·문화적 연대의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세종은 백성이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는 문자교육이 권력자와의 대화를 가능케 하고, 억울함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믿었다. 오늘날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단지 시험을 위한 국어가 아니라, 삶의 언어를 배우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진짜 교육이다. 〈나랏말싸미〉는 우리에게 그 점을 환기시킨다. 글을 쓴다는 건 존재를 기록하는 일이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그 ‘연결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언어의 힘을 가르쳐야 한다.

〈나랏말싸미〉는 교과서가 아닌 영화지만, 교육 현장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작품이다. 문자 교육의 기원, 언어의 의미, 교육의 철학이 모두 담긴 이 작품은 교실 안의 교육을 교실 밖의 현실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한글은 문자 그 자체로도 위대하지만, 그에 담긴 철학은 더욱 위대하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교육, 누구도 침묵하지 않는 언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세종이 꿈꾼 국어교육의 철학이자,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의 본질이다.

 

3. 한글은 한국 최초의 디자인 혁명

우리는 흔히 한글을 '과학적인 문자', '세종대왕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한글을 문자 체계를 넘어서 디자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단지 새로운 글자 발명이 아니라 조선 사회 전체를 바꾼 근대적 사고 방식의 전환점이었다. 요즘 시대에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을 꾸미는 미학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글은 조선에서 일어난 최초이자 가장 급진적인 디자인 혁명이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며, 당대 최고 수준의 철학자이자 언어학자, 그리고 ‘디자이너’였다. 그는 먼저 백성들이 겪는 불편을 인식했다. 백성들은 말을 할 줄 알지만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다. 법령을 이해하지 못했고, 억울함을 호소할 길도 없었으며,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도 없었다. 세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한자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 체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이 접근은, 오늘날의 디자인 사고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글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고 직관적이다. 자음은 사람의 발음 기관, 즉 혀, 목구멍, 이, 입술 등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떠 만든 자음이고, ‘ㅁ’은 입술이 다물어진 모양을 상징한다. 이는 단지 외형의 상징이 아니라, 사용자의 발음 구조를 시각화한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 조선에서, 이렇게 인체 구조를 바탕으로 문자를 설계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모음 체계 또한 음양오행의 철학과 발성 위치를 조합해 설계되었다. ‘ㆍ’는 하늘, ‘ㅡ’는 땅, ‘ㅣ’는 사람을 의미하며, 이 세 가지 기호가 결합되어 모음이 구성된다. 이처럼 한글은 당시 유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사고를 융합한 고도의 설계물이자, 철학과 기능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디자인이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가치는 “누구나 쉽게 배워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지금의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 또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개념과도 연결된다. 기존의 한자는 상류 계층만 이해할 수 있었지만, 훈민정음은 며칠만 공부해도 익힐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명확했다. 즉, 세종은 문자의 ‘디자인’을 통해 지식과 소통의 벽을 허물고, 권력의 독점을 무너뜨렸다. 더불어 한글은 모듈형 디자인(Modular Design)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수많은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구조는, 매우 높은 생산성과 확장성을 제공한다. 이처럼 소수의 요소만으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글은 현대 타이포그래피 이론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언급된다. 이는 디자인에서 핵심으로 여겨지는 '단순함 속의 다양성'을 완벽하게 구현한 셈이다. 훈민정음을 단지 학문적 성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통해 사회적 소통을 재설계한 총체적 시스템 디자인으로 본다면, 그 혁신성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바일 키보드, 폰트, 출판 기술, 교육 콘텐츠 등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기반에서 한글은 그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이는 설계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증명하는 사례다. 조선이라는 유교적, 계급 중심 사회에서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디자인은 본래 권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접근성의 도구이다. 세종은 이 점을 누구보다 먼저 인식했고, 문자라는 추상적 시스템을 통해 그것을 실현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었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민간에서 일기, 편지, 소설 등이 쓰이면서 국민 참여형 문화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디자인은 언제나 ‘문제 해결’에서 출발한다. 세종이 발견한 문제는 ‘글을 모르면 백성이 나라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복잡한 한자 중심의 지식 구조 속에서 단순하고 명확한 해결책으로 훈민정음을 설계했고, 이는 당대에는 반대와 저항을 불러왔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 조선을 넘어 전 세계가 인정하는 문자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디자인의 진짜 가치는 형태가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의 디자인 교육, 특히 정보 디자인, UX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에서 한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사례 연구 대상이 된다. 한글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정보 전달을 위한 최적의 시각 언어이며, 문화와 기술, 철학이 결합된 고도화된 시스템 디자인이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한글을 ‘가장 완벽한 문자 시스템’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훈민정음이 단순한 문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중심 디자인(Design for Humanity)의 가장 초기 형태였다는 점이다. 세종은 누구보다 앞서, 언어를 통해 사회 구조를 재설계하려 했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글을 단지 ‘과학적인 문자’가 아니라, 조선이 남긴 최초의 디자인 혁명으로 기억해야 한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발명이 아니라, 사용자의 언어 경험을 중심에 둔 조선 최초의 디자인 혁명이었다. 훈민정음은 정보 전달, 철학, 사회 구조 개선이 결합된 고도의 시스템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