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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이브스 아웃> 집의 계단, 가부장제의 몰락, 블랑의 억양

by borybory-click 2025. 5. 2.

영화 &lt;나이브스 아웃&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9. 12. 04.
  • 장르: 미스터리, 스릴
  • 평점: 8.94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30분
  • 감독: 라이언 존슨
  • 주연: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아나 데 아르마스, 제이미 리커티스, 토니 콜렛, 마이클 섀넌, 돈 존슨 

 

1. <나이브스 아웃>에서 집의 계단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은 고전적인 미스터리 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날카로운 사회 분석과 계급 구조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라,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위와 아래가 바뀌게 되었는가'이다. 그 상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영화의 중심 무대인 트롬비 저택의 계단이다. 이 계단은 물리적인 건축 요소이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계급, 권력, 사회적 위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주요 기호로 기능한다.

트롬비 저택은 고전 탐정소설의 배경처럼 느껴지는 복잡하고 폐쇄적인 구조를 지닌 공간이다. 저택은 외관부터 낡고 중세적이며, 내부는 수많은 소품과 계단, 복도로 얽혀 있다. 이 구조는 단지 장르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가족 내부의 긴장과 위계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특히 중앙 계단은 이 집의 모든 권력과 사건의 중심이다. 저택 2층의 서재는 가족 구성원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할란 트롬비’의 영역이다. 계단의 꼭대기, 서재로 향하는 길은 곧 최고 권력자의 자리로 이어지는 상징적 통로다. 이 공간에서 할란은 집필을 하고, 유산 계획을 세우며,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연출한다. 그는 높은 곳에 있지만, 자신의 가족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을 시험한다. 마르타는 트롬비 저택에서 일하는 간병인으로, 사실상 집의 ‘외부인’이다. 시민권조차 불확실한 이민자의 딸로,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한 인물이다. 그러나 할란은 마르타에게만은 진심을 털어놓고 신뢰를 보인다. 그녀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서재에 ‘초대’ 받는다. 영화에서 마르타가 서재로 향하는 장면은 매우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그려진다. 그녀는 계단을 오르며 신발 소리를 죽이고, 손잡이를 꼭 붙잡은 채 위를 바라본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오름이 아니라, 하층 계급이 상층 권력 구조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물리적으로 오르지만, 동시에 사회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그 오름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도덕성과 정체성, 윤리적 기준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은 진실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계단 위로 올려놓는다. 트롬비 가문의 가족들은 겉보기엔 세련되고 성공한 인물들이다. 기업을 운영하거나, 예술을 하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상류 계층의 삶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할란의 유산과 명성을 기반으로만 존재하는 기생적 존재임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계단은 이들의 ‘겉과 속’을 드러내는 무대다. 처음엔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유롭게 활동하던 그들은, 유산 상속이 마르타에게 넘어간 이후 계단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자들이 된다. 특히 유언장 공개 장면 이후, 가족들이 분노와 혼란 속에서 아래층으로 몰려 내려오는 장면은 단순한 분노 표현이 아니라, 계급적 추락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연출이다. 특히 영화 말미, 마르타가 저택의 가장 높은 곳에서 커피를 들고 트롬비 가족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은 상징의 정점이다.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이 구도는, 사회적 권력이 완전히 이동했음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마르타가 들고 있는 머그컵에는 ‘My House, My Rules, My Coffee’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이는 곧 그녀가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라, 이 집의 ‘진짜 주인’이 되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영화 촬영에서 계단은 단지 오르내리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선을 조절하는 장치로 쓰인다. 계단 위의 인물은 주도권을 쥐고 있고, 아래의 인물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마르타와 블랑이 할란의 죽음을 재구성하며 계단을 바라보는 장면, 가족들이 블랑의 추리를 듣기 위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장면은 시각적 구도만으로도 권력의 중심이 어딘지를 명확히 말해준다. 또한 이 영화는 종종 인물들이 계단을 오를 때 ‘숨’을 멈추게 만든다. 계단은 긴장과 고요, 공포와 진실이 만나는 곳이다. 이는 미스터리 장르에서 공간을 감정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연출 방식이며, 〈나이브스 아웃〉은 이를 통해 관객에게 계급 구조의 ‘감정적 리얼리티’를 체험하게 한다. 계단은 사회학적으로도 상징성이 크다. 오름은 발전과 성취, 내림은 몰락과 실패를 상징한다. 〈나이브스 아웃〉에서 계단은 이 상징성을 극대화한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태생적 배경'이 아닌 '도덕성과 선택'에 따라 계단의 위치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마르타는 윤리적으로 올곧고,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의 잘못에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인다. 반대로 트롬비 가족은 탐욕, 위선, 거짓말, 그리고 책임 회피로 가득하다. 결국 영화는, ‘가장 올바른 사람이 가장 위에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이상을 시각적으로 실현한다.

〈나이브스 아웃〉에서 계단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위란 무엇인가?” “혈연인가, 돈인가, 교육인가, 아니면 정직함과 배려인가?” 이 영화는 단지 미스터리를 푸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위계와 그 기준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계단이라는 단순한 공간이 이처럼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영화는 드물다. 〈나이브스 아웃〉의 트롬비 저택 계단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물의 도덕성과 계급 이동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다. 계단의 위와 아래는 혈통이 아닌, 선택과 윤리성에 따라 달라진다.

 

2. 가부장제의 몰락을 풍자

라이언 존슨의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전통적인 미스터리 형식을 따르면서도, 그 외피 속에 날카로운 사회 비판과 계급 풍자, 가족 구조에 대한 전복적 시선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누가 가족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 권력은 누구의 손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영화는 살인을 둘러싼 진실을 좇는 척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실험을 수행한다. 바로, 현대 가부장제 가족 구조의 몰락을 블랙 코미디로 풍자하는 실험이다.

〈나이브스 아웃〉의 서사는 '할란 트롬비'라는 인물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그는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트롬비 가문의 정신적·경제적 기둥이었다. 외부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내부에서는 조용한 카리스마로 가족을 장악한 가부장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에게 의존하고, 그의 부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할란의 죽음은 단순한 가족의 상실이 아니라, 권력의 중심이 무너지는 사건이다. 그가 사라진 순간부터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상속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보다 유산이 누구에게 가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장면은 가부장이 사라진 뒤의 '핵가족 붕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이다. 트롬비 가문의 가족들은 겉으로 보기엔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이상적인 미국 중상류층처럼 보인다. 딸 린다는 자신의 부동산 사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수성가형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아버지의 자금 지원으로 시작한 사업이고, 그 사실을 부인한다. 사위 리처드는 겉으로는 유능한 정치 중개인처럼 보이지만, 아내를 배신하고 있고, 처가의 권력에 기대어 살아간다. 아들 월트는 아버지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독창성도 없고, 결정권도 갖지 못하는 '허울뿐인 후계자'일 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가족이기 때문에' 어떤 권리를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유산을 지킬 수 있는 ‘구조적 자격’에 불과하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혈연 중심 가족관’의 허상을 드러낸다. 혈연은 더 이상 도덕적 우위도 아니고, 자격도 아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돈에 기대어 살아왔고,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에서 자신의 무능을 숨기며 살아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할란의 간병인 ‘마르타’다. 그녀는 트롬비 가문과 혈연도 없고, 같은 인종도 아니며, 사회적으로도 가장 약자에 속하는 이민자 여성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인물을 통해 전통적인 가부장 가족 질서에 강력한 균열을 만든다. 마르타는 늘 조심스럽다. 실수하면 안 되고, 들키면 안 되며, 감정적으로 동요하면 안 된다. 그녀는 가족 구성원들의 '도움 대상'이자 '도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는 트롬비 가문의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며 윤리적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못 하고, 실수에 대해 책임을 지며, 끝까지 타인을 위한다. 할란은 죽기 직전, 이 마르타에게 전 재산을 상속한다. 이는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도덕성의 기준에 따른 권력 재편의 선언이다. 더 이상 혈통과 성별, 지위가 권력의 조건이 아니다. 영화는 이 순간, 자본주의 가족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한다. 한 가문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건 혈연이 아니라, 신뢰와 책임의식이라는 점을 말이다. 유언장이 공개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블랙 코미디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마르타를 가족처럼 생각했다’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던 가족들이, 유산이 그녀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 돌변한다. 법적 책임을 물으려 하고, 마르타의 출신 국가를 제대로 기억조차 못 하면서 '불법 체류자'라고 몰아세운다. 이 장면은 미국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겉으로는 다양성과 포용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이민자에게 차가운 미국 사회, 혈통과 국적 중심으로 작동하는 권력 구조를 풍자한다. 트롬비 가족은 마르타를 ‘도덕적으로는 우리보다 나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그녀가 자신의 ‘몫’을 침범했다는 사실만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21세기형 자본 계승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은 이를 코미디로 승화한다. 관객은 이들의 위선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동시에 자본과 가족이 결합할 때 얼마나 부패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실감한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할란’이라는 가부장이 실제로는 이 모든 갈등을 예상하고, 오히려 ‘의도적으로’ 가족을 시험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 가족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활용한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도덕적 리더는 아니다. 할란 역시 오랜 시간 가부장적 권력 구조 안에서 가족들을 통제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시스템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 권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분배한다. 영화는 이 순간, 가부장제의 ‘자발적 퇴장’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열어젖힌다. 더 이상 권력은 남성 중심, 혈통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 인간성이라는 기준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코미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웃음은 허탈하고도 통쾌하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웃게 되는 아이러니는, 관객 스스로도 ‘내가 믿고 있었던 가족이 과연 공동체였나, 아니면 시스템이었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르타는 저택의 가장 높은 테라스에서, 아래에 모인 트롬비 가족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신다. 그 컵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My house. My rules. My coffee.” 이제 그 집은 더 이상 ‘트롬비의 집’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것이다. 더 이상 가부장이 없고, 위계질서도 없다. 오직 책임과 신뢰, 윤리가 남아 있을 뿐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할란 트롬비의 죽음을 통해 가부장 중심의 가족 구조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덕성과 책임 있는 선택이 혈연을 대신해 권력의 기준이 되는 과정을 풍자와 코미디로 풀어낸 블랙 코미디 걸작이다.

 

3. 블랑의 억양과 말투는 거리두기 장치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은 고전 추리극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익숙한 ‘저택 살인사건’, 명석한 탐정,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갈등 등의 요소가 모두 등장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캐릭터와 연출 방식이 기존의 틀을 교묘하게 비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브누아 블랑(Benoit Blanc)’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다. 깔끔한 복장, 느릿한 걸음걸이, 묘한 거리감. 하지만 그중에서도 관객의 귀에 가장 먼저 꽂히는 것은 그의 특유의 말투와 억양이다. 남부 억양처럼 들리지만 특정 지역을 특정하지 않으며, 고전 문학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유적 문장을 구사한다. 단순한 캐릭터 설정을 넘어, 이 억양은 블랑이 자신과 타인을 언어적으로 거리두기 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처럼 기능한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블랑은 외형적으로 보면 다소 기이해 보인다. 조용한 저택 한가운데서 혼자 피아노를 치고, 질문보다는 관찰에 시간을 더 쓰며, 때로는 엉뚱해 보일 정도로 우회적인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특성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특히 그의 억양은 자기 위치를 ‘낯설게’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탐정이란 직업은 기본적으로 관찰자다. 중심에 서는 순간, 그는 객관성을 잃는다. 블랑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말투부터 자신의 존재를 ‘기이하게’ 만들어 타인에게 거리감을 조성한다. 이 거리감은 단지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올바르게 읽기 위한 도구다. 탐정이 감정적으로 연루되면 추리가 흐려지고, 사람들의 방어가 강해진다. 블랑은 이 위험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블랑의 억양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트롬비 가족의 일원들은 그의 말투를 조롱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한다. “케이프 사우스 스타일?”이라거나 “켄터키 프라이드 푸아로냐?”는 농담은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블랑은 자신의 전략을 성공시킨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블랑의 첫 번째 추리다. 그의 억양은 방어적인 벽처럼 작용하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무해하게 느껴진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촌스러움, 과장된 완곡 표현, 묘하게 낯선 리듬은 트롬비 가족처럼 교양을 중시하는 계층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로써 블랑은 자연스럽게 모든 인물로부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한다. 그는 말투로 정체성을 감추고, 표정을 최소화하며 감정을 자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블랑이 단지 ‘탐정’이 아니라, 심리 연출가이자 전략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이브스 아웃〉에서 블랑은 항상 사건의 중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그는 용의자들을 몰아붙이지 않으며, 한 사람을 향해 의심을 집중시키는 전통적인 방식의 탐정이 아니다. 그는 ‘사건’보다 ‘사람’에 주목하며, 가족 구성원들의 언어, 표정, 관계를 조용히 읽는다. 이때 중요한 건, 블랑의 말투는 ‘듣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장치이면서, 관객에게는 ‘해석자’로서의 위치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직선적이지 않다. 은유와 비유, 반복과 우회로 가득하다. 이런 화법은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보를 추출하는 데 유리하다. 그는 이런 말투를 통해 ‘제3의 시선’을 만든다. 누구 편도 아닌, 누구의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입장에서 진실을 구성해 낸다. 이로써 블랑은 단지 사건을 푸는 탐정이 아니라, 진실을 ‘정리’해주는 이야기꾼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언어가 계급을 드러내는 방식에 매우 민감한 영화다. 트롬비 가족은 전형적인 미국 상류층 언어를 구사한다. 단어 선택이 정제되어 있고, 감정 표현이 절제되어 있으며, 언어로 ‘나의 위치’를 방어한다. 마르타는 이민자 배경의 캐릭터로서, 말수가 적고 항상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이 둘 사이에서 블랑은 제3의 언어를 쓴다. 그의 억양은 ‘하위 계급적’인 남부 억양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교양 있는 단어와 복잡한 문장으로 고급스러움을 연기한다. 다시 말해, 그는 말투 하나로 언어 계급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인물이다. 이는 영화가 구축한 계급 구조를 흐트러뜨리는 중요한 장치이며, 결국에는 ‘언어’ 자체가 권력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흥미롭게도, 관객은 그의 말투를 ‘웃음’으로 받아들인다. 독특한 억양, 과장된 비유, 긴 문장의 리듬은 블랙 코미디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는 영화 전체의 톤과도 맞물린다. 사건은 진지하지만, 표현은 유쾌하다. 블랑은 그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고 선다. 하지만 이 웃음은 단지 유쾌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블랑이 사건의 진실을 말하는 마지막 순간, 그의 말투는 여전히 완곡하지만, 문장 구조는 간결해지고 단단해진다. 그는 화려한 비유를 줄이고, 진심 어린 언어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 변화는 캐릭터의 성장이라기보단, ‘가면을 벗는 순간’에 가깝다. 처음부터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블랑의 말투는 감정과 진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다. 그는 직설적이지 않지만, 본질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지만, 공감 능력이 없다거나 냉정하진 않다. 그가 마르타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연민과 존중이 섞여 있으며, 그가 트롬비 가족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비판적이지만 예의를 지킨다. 이런 언어적 균형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중요한 소통 방식과도 닮아 있다. 단순하게 비판하거나 지적하는 대신, 진실을 다치지 않게 말하는 것. 블랑은 그것을 말투 하나로 해낸다.

결국, 블랑의 억양과 말투는 단순한 ‘개성’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거리 두기의 상징이다. 그는 사람과 거리를 두지만 고립되지 않고, 정체성을 감추지만 신뢰를 얻는다. 그는 언어를 통해 권위 없이 권위를 갖는 방식, 감정 없이 공감하는 법, 관여 없이 관찰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나이브스 아웃〉은 블랑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말하는 방식이 곧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의 말투는 탐정이라는 역할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나이브스 아웃〉 속 블랑의 말투와 억양은 단지 개성이 아닌, 타인과 거리를 유지하며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다. 언어로 심리적 균형을 잡는 그의 말투는 캐릭터 해석을 넘어 영화의 윤리적 중심축이 된다.